약물이 체내에 들어가면 흡수, 분포, 대사, 배설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들을 통해 약물이 어떻게 약효를 나타내는지 독성이 생기는지 알 수 있다. 이때 약물의 농도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약물동태학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약물의 복용 간격과 양을 정할 수 있으며, 수학적 예측 기술을 활용해 실험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약물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
최혜경 작가는 약물동태학에서 영감을 받아 약물이 인체에 흡수되고 분포되며, 대사와 배설되는 과정을 <마이크로그래피아(Micrographia)>라는 SF적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야기는 주인공 '이나보글리플로진'약물이 인체를 은유하는 세계 '홀론'에 방문해 질병을 치료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떠나는 화학적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이나보글리플로진은 세포, 분자, 전자로 구성된 홀론의 미시적 영역을 탐험하며 홀론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 물질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관찰한다. 역설적으로 홀론은 독립해 존재하기 위해 반드시 열려있어야 한다. 이에 작가는 구면 기하학을 활용해 비완결적 개체인 홀론을 표면이 열리고 닫히는 구(Sphere)로 시각화하였다. 외부와 내부가 뒤바뀔 수 있는 구의 형상은 인체를 포함해 입자, 세포, 생명체 등 세계를 구성하는 단위를 상징하며, 존재와 세계 사이의 경계가 본질적으로 모호함을 암시한다.